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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조국-윤석열, 살아 있는 권력의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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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조국-윤석열, 살아 있는 권력의 충돌
  • 최자영 (전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
  • 승인 2020.01.30 0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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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교체‘ 혹은 ’신인‘ 담론은 집권적 권력구조 개혁의 필요성 은폐하는 속임수

[이코노믹매거진=최자영 교수] 조국-윤석열 사태의 핵심은 도덕성이 아니라 ‘살아있는 권력’ 간의 충돌이다.

공수처 설치와 검경수사권조정 등 일련의 개혁적 법안이 통과되었다. 이제 지난날과 다른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가 보다하고 기대들을 하게 되지만, 한국 정치사회의 뿌리 깊은 바탕은 그 기대를 허물어뜨리게 될 암초를 여전히 감추고 있다. 공수처가 만병통치약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암초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하나는 민초 자신의 가치 판단의 오류이고, 다른 하나는 집권의 폐해로서, 법 제도 속에 통치 권력의 오남용을 허용하는 독소조항들이다. 집권의 권력구조는 일제 식민지 통치, 해묵은 독재의 전통을 통해 강화되어 왔다.

첫 번째, 가치판단의 오류는 지금도 진행 중인 조국-윤석열 사태에서 드러나는 도덕성 담론이다. 검찰이 법무부장관이었던 조국의 가족을 선택적으로 집중 수사한 사태를 두고 두 가지 상이한 반응과 해석이 나왔다. 하나는 전에 몰랐던 검찰의 악의적 권력 남용이 이렇듯 마녀사냥에까지 이를 수 있음을 깨달은 사람들이 검찰 개혁에 마음으로 편승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검찰조직에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윤석열은 올바른 일을 하려고 했다는 일말의 윤석열 동정론이다.

그런데 바로 이 윤석열 동정론에 문제가 있다. 하나는 도덕성 담론이 전면에 대두됨으로써 검찰조직이 구조적으로 초래하는 적폐가 민중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리도록 한 것이다. 사실과는 별개로 한편에 윤석열의 도덕성 혹은 ‘살아있는 권력 응징론’, 다른 한편에 조국 혹은 조국 일가가 갖는 비도덕성을 대비하는 담론이 검찰 권력이 갖는 조직적 적폐에 대한 개혁의 필요성을 꺾어 땅에 묻어버리는 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이런 담론의 구도에서는 법무부뿐 아니라 검찰도 다소간 시퍼렇게 살아있는 권력이라는 사실조차 은폐된다. 검찰이 고양이 앞의 쥐처럼 권력에 의한 가련한 피해자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만일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이 아니었다면, 이렇듯 청와대나 법무부장관을 표적으로 겨누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법무부의 검찰 인사가 있고 난 다음 검찰은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등을 직권남용혐의로 고발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 있다.

지금까지 한국의 독재권력은 입법권과 사법권을 권력의 시녀로 이용해왔다. 그런데 그 권력들 간의 전쟁이 비로소 시작되었다. 행정부가 검찰의 권력을 축소하고자 하니 검찰조직이 반발하고, 그 반발은 청와대는 물론 검찰 자체가 소속된 상위 관청 법무부를 향했다. 600만이 넘는다고 하는 사법피해자의 원성이 하늘을 찔러도 눈 깜짝하지 않는 조직적인 비리의 온상인 검찰은 그 자체가 ‘살아있는 권력’으로서 개혁에 저항하고 나섰다.

검찰의 ‘도덕성’ 담론은 ’재량권 남용‘ 담론으로 치환되어야 한다

윤석열 동정론이 가진 또 다른 문제는 정부 기능의 한계에 관련한 것이다. 그것은 검찰의 선택적 수사가 일상적, 상습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민초들이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찰은 물론 검찰은 인력이 만성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범죄 사건을 다, 그것도 철저하게 수사할 수가 없다. 그래서 선택적으로 ‘재량권’을 행사한다. 재량권이란 어떤 범죄는 수사하고 어떤 것은 아예 안 한다는 말이다. 범죄가 발생했는데, 경찰, 검찰이 수사를 하지 않는다? 당연히 그렇다. 인력이 모자라니까 인력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수사를 안 하는 것도 합법적이다.

문제는 검사도 사람인지라, 재량권을 들이대는 잣대가 고무줄 같아서 마음 먹기에 따라 그 길이가 수시로 변하는 것이다. 재량권 행사의 이론적 기준이 영 없는 것은 아니고, 공익의 정도에 비례해서 큰 것부터 수사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공익의 정도를 판단하는 것도 검찰 자신이라, 민초들이 보기에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사건같이 보이는데도 검찰이 수수방관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경원 자녀 비리를 수사하지 않고, 세월호 사건을 수사하지 않아도 그 검찰의 선택적 조치는 불법이 아니다. 

윤석열이 조국의 딸 표창장 수사를 한 것을 두고 세간에서는 ‘살아있는 권력도 수사하는 도덕적 검찰’이라는 담론으로 접근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사실은 이 ‘공익의 크기에 비례한 재량권’의 원칙에서 본다면, 단순하게 ‘도덕성’으로 규정하기 곤란한 점이 있다.

그것도 조국 자신이 아니라 그 ‘가족’의 수사와 관련하여 며칠 사이에 70여 차례 이상 집중적으로 검찰의 압수수색이 이루어졌다. 장관은 조국인데, 그 가족에 대해 이른바 인디안식 기우제 같은 무차별적 집중 수사가 이루어졌다. 그런 가운데서 그 가족에게 주어지고 있는 혐의에 조국 자신이 결정적으로 연루되었다는 보도는 아직 나오지 않은 것 같다.

조국 딸의 표창장 위조 혐의가 있다면 재량권의 기준에서 볼 때 그것이 공익의 크기에서 우선순위에 들어가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나아가 조국 동생이 학교를 경영하면서 교사 임용 시 돈을 챙겼다고 한다면, 그 같은 범죄가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빈도의 문제도 고려할 필요도 있다. 

사실 학교 경영자가 예비 교사로부터 돈을 받아 챙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절초풍 놀라 나자빠질 사람은 대한민국 내에서는 아무도 없을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수뢰문제는 사회 전반에 광범하게 확산된 병리적 현상으로 인식되고 있고 사립학교 교사로 취직되는 경우는 특히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보편적인 적폐를 전수 조사하는 것도 아니고, 조국 가족의 경우에만 집중적으로 들고팠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고, 재량권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형평성이 없다.

빈도의 문제는 조국 딸의 표창장 문제에도 적용된다. 나경원의 자녀 비리를 수사하지 않는다는 것은 한 상징의 예시에 불과한 것이다. 김성태가 그 딸을 KT에 취직시키려고 편법을 쓴 사실이 다소간 소명이 된다고 하면서도, 법원은 그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사람들은 말장난 같은 법원의 판결에 고개만 갸우뚱할 뿐이다. 알 수 없는 검찰의 선택적 집중 수사나 말장난하는 것 같은 법원의 고무줄 판결은 도무지 수긍하기 어려운 데가 있다. 한국이 최근에도 OECD 주관 사법신뢰도 조사에서 이들 국가 중 꼴찌를 기록한 것도 이 같은 사법 관행의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겠다.

강남 부자들 비리의 전형으로 조국 전 장관의 가족을 매도하는 것도 문제가 없지 않다. 조국만 그런 것이 아니고, 조국을 처벌하고 제거한다고 해서 강남 부자의 해묵은 특권과 비리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조국사태는 특정 인물에 대한 도덕성 공격으로 귀결될 뿐,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강남의 부자는 여전히 건재한다. 결국 조국-윤석열 도덕성 담론은 인물과 그 도덕성 여부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거시적인 사회 구조적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도록 핵심을 흐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국민개헌발안권을 확보하고 법률상 독소조항을 제거해야 햔다

도덕성 담론에 이어서 적폐 양산을 조장하는 두 번째 암초는 법률상의 독소조항이다. 이런 독소조항이 마침내 공수처가 설치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심각한 행정, 입법, 사법 권력 전반의 부패를 조장해온 원인이 되었다. 적폐를 원천적으로 양산하는 법제도를 시정하지 않은 채 적폐청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공수처 설치로서 만족하고 손을 떼려는 자가 있다면, 그는 시늉만 할 뿐, 진정한 적폐 척결의 의도를 갖지 않은 것이라는 점을 각인할 필요가 있다.

적폐청산은 권력 상호 간 견제 체제를 회복함으로써, 그리고 그 권력의 상호견제는 권력의 분산에 의해서 가능해진다. 뿐 아니라, 그 권력의 오·남용은 주권자인 민초가 위정자의 권력을 감시 처벌함으로써만이 방지할 수가 있다.

위정자의 권력을 주권자 민중에게로 돌리는 권력구조의 개편의 첫걸음은 박정희 유신독재 때 빼앗아간 국민개헌발안권을 국민 민중에게로 돌려주는 것이다. 일단 국민개헌발안권이 확보되면 그 다음 순서가 법률상의 독소조항을 걸러내는 것이고, 또 노동, 경제.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갖가지 정책을 발안하여 수정하는 일이다. 그러나 수차례의 국민개헌발안권 요구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들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귀를 막았다. 이는 지금의 국회도 독재정권의 연장선상에서 속마음을 독재정권과 같이 한다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

특히 사법 관료에 의한 권력의 오·남용을 조장하는 법률상의 독소조항을 걸러내는 것이 급선무이다. 1987년 변칙적 과정에 의해 설치된 헌법재판소는 애초부터 재판소원을 금지함으로서 3심급 재판을 견제 없는 횡포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데 기여했다. 뿐 아니라 헌법재판소가 설치된 지 20년이 지난 2007년 개정형사소송법에서 헌법재판소로 하여금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대한 견제의 기능까지 포기하도록 했다. 법의 ‘개악’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 전에는 검사의 불기소처분에 대한 불복으로서의 법원에 재정신청을 하고, 그 결정에 대해서도 불복하면 헌법소원을 할 수 있었으나 개정형사소송법에서는 이것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이런 법의 개악은 검사의 전횡을 더욱 방조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 외에도 헌법 103조 법관이 ‘양심에 따라 재판’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은 근거없고 무책임한 판결을 남발하는 근거가 되었고, 판결문의 이유를 생략할 수 있도록 한 민사소송법(제224조 제1항, 소액사건심판법 제11조의 2, 제3항) 등도 판사의 불법적이고 자의적 판결을 조장하여 기본권을 훼손해왔다.


사회보장 정책이나 생물적 ‘세대교체’ 담론은 집권의 구조를 타파하는 정책의 발견으로 치환되어야 한다

올해 4.15 총선을 앞두고 민중의 표심을 끌기 위해 크게 두 가지 조류가 판을 치고 있다. 하나는 신생정당들에 의한 갖가지 새로운 사회주의 정책의 제시이고, 다른 하나는 기존 정당들은 중심으로 국회의원 후보의 속성을 대폭 물갈이한다는 ‘세대 교체’의 기치이다. 그런데 이 두 조류는 제각기 목적 달성에 방해가 되는 함정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원하는 목적을 어떻게 달성할 수 있는가 하는 방법론이 결핍된 것이다.

새 정책 제시의 경우, 노동. 기본소득, 미래, IT미래, 선한 시민, 통일 등, 여러 가지 를 내건 신생 정당들이 만들어지고 있고, 저마다 나아갈 목표가 다양하다. 그런데  그런 목표를 향하는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기존의 어떤 요소가 훼방이 되는지 하는 미세 사안에 천착하지 않고, 지금까지 왜 그런 정책이 시행되지 않았을까, 그런 정책의 시행을 방해해온 요소가 무엇일까 하는 데 대한 반성이 없이 그저 거시적이고 추상적인 목표 제시에 머물고 있다.  열 가지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한 가지라도 그것을 어떻게 관철할 수 있는지의 방법에 대한 고민이 없는 것은 산고를 겪고 있는 신흥 정당뿐 아니라 개혁의 기치를 드높이는 기존의 정당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세대교체 담론은 4월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이른바 ‘구세대’ ‘신세대’로, 또 수차례 재선된 기존 의원을 ‘신인’으로 교체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신인’ 혹은 ‘세대 교체’ 담론의 틀(프레임)이 사람들의 관심을 엉뚱하게도 ‘인물’에 집중시킴으로써 해묵은 권력구조상의 제도적 결함을 간과한다는 점이다.

생물적 세대교체와 정책의 혁신은 동의어가 아니다. 인물 혹은 세대의 교체는 그 자체에 그칠 뿐, 정책의 변화를 보증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런 점에서 생물적 속성으로서의 ‘세대교체’는 무의미한 것이다. 관성의 정치계에 개혁의 상징어같이 등장한 ‘세대교체’의 담론은 그 개혁의 대상이 집권적 구조의 타파라는 제도적 측면이 아니라 생물적 사람의 교체에 초점을 둔다는 점에서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다.

진실로 변혁의 대상이 되는 것은 생물적 ‘인물’이나 ‘세대’가 아니라 원칙과 권력구조의 개선이다. 그것은 위정자와 중앙에 집중된 권력구조를 타파하고, 국회, 법원, 검찰 등 관료에 의해 자행되는 과두적 권력의 전횡을 제거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특히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대두된 ‘세대교체’ 담론은 ‘국회 입법권의 독점적 구조 타파’의 담론으로 교체되어야 한다. 모든 권력의 근원으로서의 민초가 ‘’국민개헌발안권‘을 통해 입법권을 나누어받고, 또 민초가 국회의 입법권을 감시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세대교체’ 담론의 기치를 높이는 자는 진정한 개혁 대상으로서의 권력구조 개선의 필요성을 은폐하려고 획책하는 자이거나 아니면 그 음모에 놀아나는 자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자한당, 정의당 할 것 없이 ‘신인’을 발굴했다고 신문에서 자랑을 한다. 그런데 그 ‘신인’은 과거 약력이나 활동이 소개될 뿐, 현안과 정책에 대한 자신의 소신이나 한국 사회에 내재한 갖가지 적폐 청산의 전망에 대한 소신은 표출하는 바가 거의 없다. ‘신인’의 이 같은 입장은 현재 기존 정당이 그런 점에 대해 대충 묵인하고 있는 현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하면, 각 정당에서 영입하는 ‘신인’도 기존 정당의 노선에 영합하겠다, 아니면 기껏해야 크게 벗어나지 않겠다는 맥락에 있는 것으로 파악이 된다. 그러니 ‘신인’이 아니라 영입될 때부터 태생적으로 한국 정치계의 풍토를 답습하는 한 패거리의 ‘구인(舊人)’으로서 등장하는 것이다. 정책은 실종되고 인물만 남았다. 인물은 나이의 고하를 막론하고 기존의 권력구조 속으로 편입되면 맥을 못 춘다.

과거에 운동권에서 사회개혁을 위해 오래 투쟁했다는 이유로 보은성 영입이 돼서도 곤란한 점이 있다. 시대가 많이 변했으므로, 현재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점을 진단하고 주효하게 해결책을 제시하는 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좌절을 딛고 굳굳한 삶을 살아온 장애인이나 사법비리 척결을 위해 투쟁한 판사출신을 영입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과거 삶의 역정 자체가 아니라 해결책에 대한 전망이 제시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각종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데, 앞으로는 과거와 달리 어떤 방법으로 해보겠다는 방법론상의 정책에 대한 전망 말이다.

‘세대교체’ 혹은 ‘신인’ 담론은 세대 간 혹은 ‘신구(新舊)’ 간 사회적 분열을 조장한다

‘세대교체’ 혹은 ‘신인(新人)’ 담론 자체가 새 정치나 새 제도나 가치를 보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신인도 기성인 못지 않게 구성이 다양하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신세대 혹은 ‘신인’이 반드시 도 구세대 혹은 ‘기성인’과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나물에 그 밥인 경우가 있다. 요즈음 일류대학을 나온 유능한 ‘젊은 세대’는 태생적으로 금수저 출신들이 다수이고, 그 들을 키워낸 유복한 부모 못지않게 사회적 평등이나 경제적 정의에 대해서 무관심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적어도 ‘젊은 세대’ 혹은 ‘신인’의 기치는 세대나 인물 자체가 아니라, 지금까지 기존 위정자가 제시하지 못했던 가치관과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으로 그 의미가 환원되어야 하겠다. 

또 권력구조에서 비롯한 비리 척결이라는 지난한 과제를 추진하는 데에는 경험이 일천한 ‘신인’만 가지고서는 불가능하다. ‘신인’들이 특히 조심해야 할 것은 겉으로만 개혁을 빙자한 채, 내심으로는 적폐 양산의 기존 권력구조의 타파를 꺼리는 노회한 정치가들의 음모에 이용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풋내기 ‘신인’이 기존 위정자들이 중심을 이루는 정치판에서 개혁의 흉내만 내는 ‘얼굴 마담’으로 전락하는 일은 없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세대교체’ 담론은 일종의 마녀사냥으로서 벌써 이 세대 간 분열이 조장되고 있다. 젊은이는 장로 세대를 마음으로 밀어내고, 나이가 든 이는 스스로 의기소침하고 겸양의 미덕을 발휘하여 뒤로 물러나 앉으려 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현상이 죄다 사회의 개혁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며, 세대 간 위화감을 조성하게 된다.  신인은 자신의 부족한 역량에 대해 신중하게 반성하고 장로의 해묵은 지혜를 발로 걷어차지 말아야 하겠다. 또 장로는 산더미같이 쌓인 적폐 앞에서 비겁하게 물러서지 말아야 하고, 또 지금까지처럼 타성과 관성에 젖어 무기력하게 보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앞뒤 가리지 말고 물심양면으로 젊은 신인과 지혜를 함께 해야 한다.

왜란이나 촛불혁명에서나 혁명군은 많이 모일수록 좋은 것이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당신은 왜적을 물리치거나 촛불을 들 자격이 없으니 집으로 가서 아이나 보시오”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촛불 혁명에는 신인만 나온 것이 아니라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가 힘을 뭉쳤다. 그 때는 아린 아이까지 엄마가 끄는 유모차에 실려 그 추운 엄동설한 밤거리로 나왔다. 

국회 의원의 특권적 지위는 한국 사회의 권위주의와 불평등을 예시하는 풍향계이다

한국 사회의 적폐는 뿌리 깊다. 개기는 국회, 여전히 조직의 논리에 젖어 눈도 깜짝하지 않는 법원과 검찰 등이 그 중심에 있다. 그런데도 썩어빠진 국회 제도에 대한 총체적인 반성과 개선의 기치를 내건 정당이 지금까지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국회의원의 보수 등에 관련하여 정의당 등이 단편적으로 개선의 제안을 한 적이 있을 뿐이다.

우스개소리로 국회의원의 세비를 최저임금으로 책정하자는 제안이 SNS상에 떠돌아다닌다. 우스개같은 이 말이 사실은 우스개가 아니라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다. 식민지배와 독재로 점철되는 한국의 현대사는 권위적 관료의 권력을 강화해왔고, 그 한 증거가 국회의원이 가진 입법 독점권과 경제적 해택 및 각종 특권이다. 국회의원 개개인이 하나의 헌법기구로서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권력과 누리는 물적 혜택이 번번이 직무 태만 혹은 그들이 출신한 가진 자들을 위한 입법을 위한 것으로 이용되는 현실에 있다.

국회의원인자와 아닌 자의 구별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비인간적 차별과 같이 한국을 비민주적 차별 사회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대기업은 권력과 쉬 결탁하여 그 활동공간을 확장해왔고, 그 틈서리에서 많은 중소기업 대기업의 하청업체로 전락했다. 이와 같은 비민주적 경제집중력은 권력의 비민주적 집권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국회의원의 입법독점권, 보수, 무제한 재선 규정을 비롯하여 그들이 누리는 각종 특혜를 시정하는 것은 국회에 한정된 일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제도를 민주화하는 것이다. 차제에 덴마크를 비롯한 북구 나라들의 국회의원의 세비는 국민 GDP 평균을 상회하지 않으며, 네델란드와 노르웨이를 비롯한 나라들은 공무원의 수가 전체 국민의 약 30% 전후에 이른다. 세 사람 중 약 한 사람 정도가 공무원이라는 말이다.

세비가 GDP 평균을 상회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단순히 보수가 낮다는 뜻 뿐이 아니라 기눙적으로도 권력을 독점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한국이 국회의원처럼 입법 권력을 독점하지 않고 시민들과 나누어가질 때 하는 일의 부담이 적어지므로 자연히 그 보수도 낮게 책정된다. 네델란드나 노르웨이 공무원의 숫자가 많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권력의 보편화 개념을 도입할 수 있다. 공무원이 30%에 달하는 곳에서는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 구분도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닐 것이다. 공무원인자와 아닌 자 사이에 보수도 엄청나게 차이가 있을 것 같지 않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국회 운영의 민주화는 국회에 그치는 일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의 민주화를 보여주는 풍향계가 된다. 국회는 배타적 특권이 아니라 봉사하는 성직(聖職)의 아성으로 바뀌어야 한다.

‘집권적 권력구조 타파’를 위해 유념해야 할 세 가지 현안은

1) 도덕성 담론은 물론 정책 부재의 ‘세대교체’ 혹은 ‘신인’ 담론은 적폐의 청산을 방해하는 것으로서, 중앙 정부와 위정자가 갖는 집권적 권력구조 타파의 필요성을 은폐하려는 음모이다.

2) 박정희 유신정권하에서 빼앗긴 국민개헌발안권을 민초에게 돌려주려 하지 않는 국회는 그런 점에서 유신독재정권 하의 국회와 다를 바가 없다.

3) 한편으로 공수처 설치법안을 통과시킨 국회가 다른 한편으로 각종 사법적폐를 양산하는 법률의 독소조항을 수정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은 적폐를 해결하려는 진정한 의지 없이 수박 겉껍데기만 핥는다는 증거이다.

[독소조항의 예시: ‘법관이 양심에 따라 재판한다(헌법 103조)’, 판결문에 판결이유를 생략할 수 있다(민사소송법 224조, 소액사건심판법 제11조), 헌법재판소의 재판소원금지(헌법재판소법 제68조), 검사불기소처분 헌법소원 금지(2007 개정형사소송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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