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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방랑하는 황혼...“코로나 보다 무서운 외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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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방랑하는 황혼...“코로나 보다 무서운 외로움”
  • 이동훈 기자
  • 승인 2020.03.02 02: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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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만 고령화 시대를 맞은 우리 시대의 자화상.

[이코노믹매거진=이동훈 기자] "우리도 치욕없는 노년을 보내고 싶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텅비어가는 도심과는 달리, 노인들은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부익부 빈익빈 속에서 방황하는 황혼들을 탑골공원과 천호공원에서 만나보았다.

◆세상의 소외, 견디기 힘들어

모처럼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던 지난 2월 16일 오전, 사적 제354호로 서울 최초의 근대 공원인 탑골공원. 조선 세조 13년에 원각사로 건립하였던 것을 고종 34년인 1897년 도지부 고문인 영국인 브라운에 의해 공원으로 조성되어 1920년에 공원으로 개원하였다. 1919년 3. 1 운동의 발상지로 처음으로 독립 선언문을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외친, 민족의 정신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어김없이 이야기판이 벌어지고, 정치 세태에 관한 이야기로부터 우스개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세상살이에 얽힌 갖가지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마음 둘 곳 없는 노인들이 이곳을 찾는다. 심지어는 코로나19여파에도 아랑곳 없이 수원과 청주에서도 오는 어르신도 있다. 그 몰리는 인파가 코로나 이전 평상시에도 수만이었다고 한다. 

탑골공원 관리원의 말로는 종묘에는 수를 헤아릴수 없을 정도로 많은 노인들이 몰린다고 한다. 마장에서 왔다는김옹(73)에게 이곳으로온 이유를 묻자 “집에 있기가 외로워서 였다”고 답했다. 

이곳에서만 20년 가까이 돼지머리 국밥 장사를 해왔다는 정 씨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그에게 들은 이야기는 조금은 충격적이었다. 멀리서 온 사람일수록 사연은 심각하다는 것. 부인과의 냉대ㆍ아들 내외의 구박 특히 자신으로 인해 시끄러운 가정을 지켜볼 수가 없어 나온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지팡이에 의지한채 고개를 파묻고 졸음과 시름하는 노인들에게서는 수많은 사연들이 있었다. 

◆가족과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했는데....

 

정 씨가 지목한 윤필수 옹(가명ㆍ73)과 어렵게 인터뷰를 가질 수가 있었다. 한 때 정부의 고급 공무원으로 일했다는 그는 침울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우리는 어려운 시대를 제 목소리 한 번 못 내고 살아온 불행한 세대다. 그저 묵묵히 일만 하여왔다. 그렇게 번 돈을 모두 자녀를 위해 투자했다. 그러나 세상은 너무나 빨리 변했다. 약간의 재산이 있고 건강만 허락한다면 돌봄의 대상으로 살기보다는 독립적으로 살고 싶어하는 것이 모든 노년의 꿈이다. 우리라고 멸시를 받아가며 구차하게 사는 것이 싫다.”

노인인구의 대부분이 한달 평균 40만원미만의 생계비로 살고 있고 가난과 질병으로 사회와 가정에서 버림받아, 오래 사는 것이 미덕은 커녕 욕이 아닌가 싶게 처참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65살 이상의 노인이 인구의 14%를 넘겨 고령화시대를 맞았는데도 우리 사회가 본격적으로 노인문제에 대처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노인문제는 우리 사회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부유층이 아니라면 평생 일해서 모은 돈으론 자녀의 도움 없이 최소한도의 품위를 지킬 수가 없다. 

윤 옹은 최근 집에서 나와 시민단체가 운영하는 대피소에 머문다고 했다. 그렇지만 마음은 편하다고 한다. 그에게 “코로나가 무섭지 않으세요?”라고 물었다.

“코로나 보다 더 무서운 것이 뭔줄 아나? 외로움이야.”

윤 옹은 이 같은 쓸쓸히 한마디 내뱉고는 모자를 눌러쓰고 터벅터벅 자리를 떴다.

◆ 하루종일 일해도 2천2백원...

강동구 천호공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곳은 장기 삼매경으로 빠진 백발성성한 어르신들로 만원이었다. 취재를 하려고 하자 50대 밑으론 들어올 수 없다며 어떤 노인이 막아선다. 취재기자라고 하자 겨우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우선 이곳의 노인들은 어떤 프로그램을 가장 많이 이용하느냐는 질문에 “노래방”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이어진 추임새들이 걸작이다. 

“(막거리를 들어보이며) 이것 한 사발에 젓가락만 있음 노래방이지.”

어르신들의 주름진 웃음 속에는 황혼의 쓸쓸함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 삶의 여유? 그것은 꿈같은 인생 

이는 건축업종의 한 기업이 실버타운을 설립하고 내건 로고다. 주거동 1층 대리석 바닥을 지나 원목 냄새가 향긋한 엘리베이터로 7층에서 내리면 공동식당. 300여평의 공간에 음악이 흐르고 테이블에서 식사하는 노인들의 모습에서 삶의 품격을 엿볼 수 있다. 치매 등 노인성 질환자는 집 같이 꾸며진 너싱홈에서 24시간 2명의 전문의로부터 보살핌을 받는다. 위급시 대형의료원으로 옮겨져 치료받는 것이 가능하도록 헬리콥터가 항시 대기한다. 

그러나 이는 서민층과는 전혀 관계없는 내용이다. 일부 부유층을 겨냥한 초현대식 실버타운이 속속 세워지고 있지만, 우리사회 대다수를 이루는 중간층과 그 이하는 아무런 대책 없이 방치되거나 하루 생활비론 한끼도 힘든 시설에 노후를 맡기고 있다. 

공원 근처 재활용공장에서 일하는 김씨 할머니는 자신의 키를 훌쩍 뛰어 넘는 종이를 팔고도 손에 쥔것은 2천200원이었다. 할머니는 행여 그 돈을 놓칠새라 가방 깊숙이 숨기고는 다시 종이를 줍으러 길을 나선다. 

◆700만 고령화 시대, 우리의 화두

소득 하위 20% 노인에 대해 지급되는 정부 보조비는 30만원. 한달 식대를 맞추기도 벅차다. 700만 고령 사회를 맞은 우리의 현실이다. 선진국들은 노인복지시설 정책이 다양하고 역사도 깊다. 일본은 이른바 오래전부터 ‘新골드플랜’을 세워 고령화 사회를 착실히 준비해왔다. 

우리나라 고령인구는 2045년에 37.0%로 일본(36.7%)을 넘어서게된다. 그때도 지금과 같다면 과연 실버의 희망이란 있을 것인가, 우리 스스로에게 자문해야할 시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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