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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조선을 덮쳤던 팬데믹…‘사회적 거리두기의 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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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조선을 덮쳤던 팬데믹…‘사회적 거리두기의 원조’
  • 박웅준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9.02 06: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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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매거진=박웅준 칼럼니스트] 코로나 19가 만든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은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로 우리 일상을 흔들고 있다. 이른바 팬데믹(Pandemic).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염병이 다른 대륙의 국가에까지 감염이 발생하는 전세계적인 범유행을 펜더믹이라 정의한다. 세계사적으로 팬데믹은 3번이 있었다. 첫 번째는 6세기 유스티니아 역병((Justinian’s plague)으로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에서 발생하여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콘스탄티노플까지 퍼져 542년에서 546년 사이에 1억명이 사망했다. 두 번째는 14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발생한 흑사병(Black Plague)이다.

중세 유럽인이 이 병으로 약 2억명 가량 희생되었다. 세 번째는 1855년 중국 운남성에서 발생한 선페스트(Bubonic plague)로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에 유행했으며 1500만명 가량 사망했다. 이처럼 팬데믹은 지역감염인 에피데믹(Epidemic)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명의 희생과 고통을 안겨준다. 이번 팬데믹은 역사상 4번째로 현재 85만명이 사망했으며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불명확한 상황이다. 우리의 과거는 어땠을까.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팬데믹이 없었을까. 가까운 조선시대를 보면 다행히도 앞서 언급한 세계적인 팬데믹의 영향을 받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1821년 조선의 상황을 보면 팬더믹이라 부를 만큼 심상치가 않았다.

■ ‘이름모를 괴질이 발생해, 사망자가 수십만명이 되었다’

“이름도 모를 괴질이 서쪽 변방에서 발생하여 도성에 번지고 여러 도에 만연하였다.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은 먼저 심하게 설사를 하고 이어 오한(惡寒)이 발생하는데, 발에서 뱃속으로 치밀어 들어 경각간에 10명 중 한두 사람도 살지 못하였다. 이 병은 집집마다 전염되어 불똥 튀는 것보다 더 빨리 유행되었는데, 옛날의 처방에도 없어 의원들이 증세를 알 수 없었다. 이때 경재(卿宰) 이상 사망자가 10여 명이었고, 여느 관료나 백성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아 서울과 지방의 사망자까지 합하면 모두 수십만여 명이나 되었다. 그리고 관서 지방이 더욱 혹심하였는데, 금년 여름과 가을 사이에 이 병이 또 발생하였고 팔도도 모두 이와 같았다. 이 병은 요주(遼州)와 계주(薊州) 지방에서 번져 들어와서 온 나라에 퍼졌다고 한다.”(순조실록 24권, 순조 21년 8월 22일)

중국에서 유행한 전염병이 조선에 넘어와 수십만 명이 죽게 되는 참혹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순종이전에는 중종 12-22년 사이에 발생한 역병으로 2만명 가량 사망한 적이 있었는데 몸니가 매개체가 되는 발진티프스(epidemic typhus)로 추정되는 풍토병으로 팬데믹과 비교하여 피해가 크지 않았다. 위 기록 1년 후인 1822년에 함경도 감사가 도내 사망자가 1만 5백명이라고 장계하는 것으로 보아 전국적으로 수십만여명 사망은 과장이 아니었을 것이다. 콜레라(Cholera)로 추정되는 순종때의 괴질은 외국과의 교류를 통해 들어온 신종 역병이고 엄청난 감염자와 사망자가 나왔던 사실은 지금의 팬데믹 상황과 별 차이가 없다. 지금과 같이 과학이 발달되지 않았던 조선은 팬데믹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태조 6년(1397년)에 제생원(濟生院)을 만들면서 서민에 대한 의료서비스를 실시한 조선은 세조 12년(1466년) 혜민서(惠民署)로 이름을 바꾸면서 서민의 질병치료와 약재조달 및 의원교육을 담당했고 괴질이 들어왔을 때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했다. 우선 혜민서는 역병에 대해 치료보다는 환자를 격리 수용함으로써 확산을 막으려 했다. 신분에 따라 초막(草幕), 질병가(疾病家) 에 격리하거나 피병소(避病所)로 병막을 세워 다수의 감염자를 수용하기도 했다. 혜민서가 주로 도성민 중심의 의료서비스를 했다면 지방도 각 도별로 산막(山幕) 같이 산에 피병소를 마련해 격리수용으로 전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 이 같은 노력은 전염병이 사람 간에 전파가 일어나는 점을 이용한 적극적인 대처방법으로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자가격리, 사회적 거리두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감염자가 산막에서 탈출해 거리를 방황한다는 보고가 조정에 올라갔다는 사실도 그렇다.

■ 조선시대에도 사회적 거리두기

 

조선 정부는 이와 같은 실제적 대처방법과 더불어 다소 정치적인 방안도 시행했는데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평양부(平壤府)의 성 안팎에 지난달 그믐 사이에 갑자기 괴질(怪疾)이 유행하여 토사(吐瀉)와 관격(關格)을 앓아 잠깐 사이에 사망한 사람이 10일 동안에 자그마치 1천여 명이나 되었습니다. 의약도 소용없고 구제할 방법도 없으니, 목전의 광경이 매우 참담합니다. 항간(巷間)의 물정(物情)이 기도를 하였으면 하는데 기도도 일리가 없지 않으니, 민심을 위로함이 마땅합니다. (중략) 먼저 본부 서윤 김병문(金炳文)으로 하여금 성내(城內)의 주산(主山)에 정성껏 기도를 올리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 돌림병이 그칠 기미가 없고 점차로 확산될 염려가 있어 점차 외방의 각 마을과 인접한 여러 고을로 번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이 또 친히 경내의 영험이 있는 곳에 기도를 올리려고 합니다. 가난하고 의지할 곳 없는 사람으로서 아파도 치료를 하지 못하는 사람과, 이미 사망했는데도 장례를 치르지 못한 사람은 별도로 구호하고 사정을 참작하여 도와 주고 있습니다(순조실록 24권, 순조 21년 8월 13일)

"유행하는 괴질이 아직 가라앉지 않아 사망자가 날마다 늘어난다고 하니, 놀랍고 송구함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이것이 이미 백성을 위한 일이라면 사례의 유무에 구애받지 말고, 아경(亞卿)을 보내 날을 받지 말고 산천(山川)의 양재제(禳災祭)를 정성껏 거행하도록 하라."(순조실록 24권, 순조 21년 8월 22일)

■ 정치적 목적이 컸던 “하늘에 제사를 지내”

전염병이 돌아 혼란해진 사회를 다시 안정시키기 위해 이처럼 다소 비과학적인 방법도 시행했다. 당시 역병은 역귀 같은 귀신에 의해 퍼진다는 인식이 있었다. 또한, 자연질서의 붕괴와 음양오행의 원리가 흐트러져 생겼다는 성리학적 믿음도 있었다. 엄청난 피해를 주는 자연현상이 왕의 모자람 때문이라는 생각도 여전한 시대였다. 이를 잘 아는 조정은 제사를 통해 역귀를 위로하고 질서를 회복하며 책임감 있는 임금과 조정이라는 것을 알리고자 했다. 이를 통해 민심을 달래 사회질서를 회복하고자 한 것이다.

그럼 민간차원에서는 어떻게 대처했을까. 민간에서도 역병이 귀신의 소행이라 믿었기 때문에 금기를 지키고 재사와 기도를 드렸다. 잡곡밥을 먹거나 소를 잡아 문에 피를 뿌려야 한다는 유언비어도 횡행하여 관련 값이 올라가기도 했다. 또한, 역병이 돌면 환자가 있는 집이나 마을을 피해 거주지를 옮겼다. 피접(避接)이라고 하는 데 온 식구가 가재도구를 가지고 임시거처로 이사함을 뜻한다. 그리고 민간에서도 양반집과 같이 여력이 되면 초막을 만들어 병자를 격리했다.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과 간이벽온방(簡易辟瘟方)과 같이 민간에 유통된 의학서를 통해 의원이 치료하거나 자가 치료를 하기도 했다. 이 역시 의원이나 약재를 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하는 방법으로 대부분 백성은 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이러한 조선시대 팬데믹을 대처하는 노력들이 얼마나 성과를 거뒀는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이 헛되진 않았을 것이다. 괴질이 발생한 3년째부터는 더 퍼졌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당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결국 펜더믹을 벗어난 조선과 같이 우리도 하루빨리 역병을 퇴치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것을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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