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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신라의 키다리 여인과 삼국유사, 그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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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신라의 키다리 여인과 삼국유사, 그 진실 
  • 박웅준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9.14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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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매거진=박웅준 박사] 지난 9월 3일 역사상 최초로 온라인을 통한 발굴현장설명회가 있었다. 경주 황남동에 있는 120호분을 발굴하면서 출토된 유물과 현장 상황에 대한 설명을 유튜브를 통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코로나가 낳은 언택트 문화가 역사 분야까지 바꾸고 있다는 사실에 씁쓸했지만, 한편으론 제한 없는 정보의 소통이란 측면에서 긍정적인 부분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2,800여명이 실시간으로 참여하고 댓글 창을 통해 발굴자와 시청자가 소통하는 모습은 지금까지 상상할 수 없었던 신선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설명회는 6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신라 시대의 무덤인 경주 120호분의 발굴성과에 대하여 사진과 현장 영상 전문가 인터뷰로 진행되었는데 120-2호분에서 출토된 무덤의 주인공이 이날 가장 주목을 받았다. 피장자(무덤에 매장된 인물)는 인골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지만 그가 착용한 금동관, 장신구, 금동신발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주목되는 점은 청동다리미, 방추차(紡錘車-섬유에서 실을 뽑을 때 회전을 돕기 위해 방추의 막대에 끼우는 부속품), 굵은귀걸이, 장식칼 같이 여성을 의미하는 유물이 출토됐고 칼이 나오지 않은 점이다. 이는 피장자가 여성임을 의미하는데 놀라운 사실은 장식구의 착용상태를 볼 때 금동관의 중심에서 금동신발 뒷꿈치까지의 길이가 176cm라는 점이다. 즉 무덤에 묻힌 신라 여인의 키가 170cm가 넘는다는 이야기다. 

필자가 아는 한 우리나라에서 발굴로 출토된 여성 가운데 최장신이며 남성으로서도 매우 드문 예라 할 수 있다.

과연 이 키다리 신라 여성의 정체는 무엇일까? 금동관과 금동신발 화려한 장식으로 볼 때 왕족과 관련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신라 왕족 가운데 키가 큰 사람이 있지 않을까. 흥미롭게도 역사서에는 키가 커서 왕비가 된 한 여인에 대한 기록이 있다.

■ 지증왕의 여인을 둘러싼 단서

(사진=문화재청)
(사진=문화재청)

 

제22대 지철로왕(지증왕)은 음경(陰莖)의 길이가 1척 5촌이나 되어 훌륭한 배필을 구하기가 어려워 사신을 삼도(三道)에 보내 배필을 구하였다. 사신이 모량부(牟梁部)에 이르렀는데, 동로수(冬老樹) 아래에서 개 두 마리가 크기가 북 만한 커다란 똥 한 덩어리를 양쪽에서 물고 다투는 것을 보았다. 그 마을 사람들에게 물으니 어떤 소녀가 고하여 말하기를 “이것은 모량부 상공(相公)의 딸이 이곳에서 빨래를 하다가 은밀히 숲속에 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 집을 찾아 그녀를 보니 신장이 7척 5촌이나 되었다. 이 사실을 왕께 갖추어 아뢰자 왕은 수레를 보내 그 여자를 궁중으로 맞아 들여 황후로 삼았고, 군신들은 모두 경하했다.(삼국유사 기이제1 지철로왕조)

지증마립간(智證麻立干)이 왕위에 올랐다. 성은 김씨(金氏)이고, 이름은 지대로(智大路) 혹은 지도로(智度路) 또는 지철로(智哲老)라고도 하였다.이다. (중략) 왕비는 박씨(朴氏) 연제부인(延帝夫人)으로 이찬(伊湌) 등흔(登欣)의 딸이다. 왕은 체격이 매우 컸고 담력이 남보다 뛰어났다.(삼국사기 권제4 신라본기)

지증왕은 재위기간이 500년에서 514년으로 국호를 신라로 통일하고 왕권을 강화하며 순장을 폐지하는 등 신라가 강국이 되는 기틀을 마련한 왕이다. 그의 부인 즉 왕비는 연제부인인데 삼국유사에 따르면 키가 7척 5촌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설화적 요소가 있지만 지증왕이 체격이 남달리 컸다는 것이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모두 등장하고 구체적인 치수도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연제부인 또한 큰 키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연제부인의 키인 7척 5촌은 몇 cm일까.

지금의 한 척(尺)은 30.3cm 이고 통일신라때 사용한 당척도 30cm가 넘지만 6세기 전반의 신라는 전한척(前漢尺)을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전한척은 한 척이 23.2㎝ 로 연제부인의 키를 환산하면 정확하게 174cm 가 나온다. 신라 시대 여성의 평균신장이 150.3cm 이고 남자의 경우 160대 초반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 큰 장신이었던 셈이다.

■ 신라와 로마  혹은 북방

(사진=문화재청)
(사진=문화재청)

 

공교롭게도 이번에 발표된 신라 여인도 170cm가 넘는다. 그리고 화려한 장식을 지닌 왕족이며 6세기 전반에 묻혔다고 한다. 이 모두 연제부인의 기록과 부합된다. 더 많은 조사와 발굴이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이 무덤의 주인공인 지증왕의 왕비이자 법흥왕의 어머니인 연제부인일 가능성은 있지 않을까.

역사서에는 삼국시대 왕들의 키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비교적 장신이거나 진평왕과 같이 11척이 넘는 초장신의 왕들을 주로 기록에 남겼다. 대게 7에서 9척 사이로 전체 평균은 8.1척이다. 정확한 치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왕 중에서도 키가 컸다면 별도로 별도의 기록을 남겼다. 연제부인은 왕비 중에서 유일하게 키가 기록되어 있고 지증왕과 관련된 설화적 요소도 첨가된 것으로 보아 여자로서는 드문 케이스였음이 확실하다.

또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건 이 여인이 과연 토종 한국인(신라인)일까 하는 점이다. 지나치게 큰 키는 신라문화가 가진 국제성 즉 유목민족 혈통과 관련성도 유추해 볼 수 있지 않을까. 4세기 들어 적석목곽분이라는 북방의 새로운 묘제가 김씨 마립간에 의해 도입되고 거기서 출토되는 금관 같은 유물이 북방유목민족 계통임은 이미 알려져 있다. 또한 로만 글라스와 황금보검 같이 국제적 무역이나 교류를 통해 들어온 유물이 신라의 무덤에서 나오는 점은 상상 이상으로 교류가 활발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녀가 모량에서 온 박씨 집안 출신인지 아니면 북방 유목국가 출신인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신라의 키다리 여인은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흔적은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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