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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흥미로운 음식배달의 역사①:조선이 로켓와우 시스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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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흥미로운 음식배달의 역사①:조선이 로켓와우 시스템을?!
  • 박웅준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9.28 11:5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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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매거진=박웅준 칼럼니스트] 코로나 시대에 더욱 호황을 누리는 흔치 않은 산업인 음식배달. 이미 전 세계적으로 2천억달러가 넘는 시장을 형성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10조가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핫한 비즈니스다. 모바일 플랫폼과 같은 IT 기술이 기반이 되어 4차산업이라고 하지만 음식 조리와 배달이라는 과정은 사람이 수행할 수밖에 없다. 많은 분야가 그렇듯 첨단산업은 사실 인간의 노동력에 기반을 둔 것이 많다. 인간은 얼마나 쉽고 편리하게 그 가치를 누리느냐에 골몰하였고 기술과 과학을 활용하고 발전시켰을 뿐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기본욕구인 식(食)을 보다 간편하게 충족시키려는 노력을 인류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 로마: 뜨거운 것이 좋아

테르모폴리움(Thermopolium)은 “(무언가) 뜨거운 것이 판매되는 장소”라는 뜻을 가진 고대 로마(BC753-AD476)의 식당이다. 폼페이에서는 83개나 발견이 되었는데 상업이 발달한 도시에서 간편하게 음식을 즐기는 장소로 유행했다. 돌로 만든 바에 항아리를 묻어 음식을 저장해놓고 주문 즉시 제공했다. 인류 최초의 패스트푸드점이자 테이크아웃 레스토랑이었던 셈인데 주로 부엌이 없던 하층민들이 주로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의 멕시코 고원에 있었던 아즈텍(Aztec 1248-1521년)에서 타말레스(tamales)를 시장에서 테이크아웃 형태로 팔았다. 타밀레란 미사(masa)로 불리는 옥수수 가루로 만든 도우에 소고기, 채소 등의 속을 넣어 만든 빵을 옥수수 껍질에 싼 음식으로 이동이 간편하게 만들어졌다. 로마와 아즈텍의 경우는 음식을 간편하게 서비스 음식 배달로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뿐 본격적인 음식 배달이 이루어졌다고 볼 순 없다.

 

■ 중국 당ㆍ송: 현대기업식 대규모 배달시스템

 

구체적으로 음식배달을 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최초의 기록은 중국 당나라(618-907년) 이조(李肇)가 쓴 국사보(國史補)에서 찾을 수 있다. 당나라 황제 덕종(779-805년)은 하남성 복주(濮州) 사람인 오주(吳湊)를 경조윤(京兆尹)이라는 고위직으로 임명한다. 승진 축하 연회를 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했지만, 그는 친척과 친구를 불렀다. 손님들은 당황해서 어떻게 빨리 음식을 준비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양시(兩市)에서 매일 예석(禮席)이 있어 각종 솥으로 그것을 가져올 수 있는데 300에서 500명까지 음식을 즉시 제공할 수 있습니다”라고 한다. 일명 입판(立辦)이라고 하는데 현대의 케이터링 서비스로 음식을 대량으로 즉석에서 가져올 수 있는 시스템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손님들이 의아해하고 놀랐다는 점에서 일반적으로 널리 퍼지진 않았던 것 같다.

중국에서 본격적으로 음식 배달이 성행한 시기는 송나라(960-1279년)때부터이다. 중국 역사상 경제적으로 가장 풍요로웠다는 송나라 시기는 생산과 인구가 늘어나고 화폐경제가 정착되어 상업과 무역 활동이 매우 활발했다. 경제의 발달과 더불어 개봉과 항주 같은 대도시에는 수 많은 상점과 식당이 있었고 음식 배달문화도 자연스럽게 발달한다. 이때는 음식을 전문적으로 배달하는 배달꾼인 한한(閑漢)이 있었는데 지금 배달 라이더의 시초라 할 수 있다. 북송의 수도 12세기 개봉의 명절날 활기찬 모습을 그린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에는 한한의 모습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있다. 앞치마를 두르고 왼손엔 그릇 두 개와 오른손에는 젓가락을 들고 어디론가 가는 모습이다. 식당과 비교적 가까운 상점에 음식을 배달하러 가는 것으로 보인다. 많은 양이나 먼 곳에 배달할 때는 식함(食盒)이라는 음식 배달 용구를 사용했다. 청명상하도의 다른 장면을 보면 머리에 이거나 작대기에 매달아 어깨에 걸고 배달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이 당시 음식 배달의 유형은 세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로 사람을 식당에 보내 음식을 직접 주문 배달시키는 방법이다. 두 번째로는 식당과 사람 또는 매장이 계약을 맺고 일정 시간에 정기적으로 음식을 배달하는 경우다. 세 번째로 식당에서 미리 준비된 음식을 도박장, 극장 등에 방문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현장 판매하는 방식이다. 통신방법과 교통수단만 차이 날 뿐 지금의 음식 배달 시스템과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의 음식 배달은 이후 완전히 정착되어 배달 주문이 많은 식당에서는 식당 업무는 관여하지 않고 배달만 하는 전문 배달직원을 단기나 장기로 고용하기도 했다.

 

■ 일본: 우리가 철가방의 원조

 

일본에서는 17세기 에도시대(江戶時代 1603-1867년)에 음식 배달이 시작된다. 1657년에 일어난 메이레키 대화재(明暦の大火)로 지금의 도쿄인 에도시는 전체 면적의 70%가 폐허가 되고 10만명 이상이 사망했다. 복구를 위해 전국에서 장인과 일꾼들이 몰려들었는데 이들은 대부분 혼자 온 남자였기 때문에 음식을 해 먹기가 어려웠다. 이들을 위한 식당과 포장마차(屋台,야타이)가 늘어났는데 일본식 패스트푸드라 할 수 있는 초밥, 메밀국수(소바)가 시작된 것도 이때이며 벤또(弁當, 도시락)문화도 발달한다. 이를 계기로 음식을 배달하기 시작했다. 이를 데마에(出前)라고 했으며 상류층의 대규모 연회, 유곽의 손님이 주 고객이었으며 서민들은 주로 천평봉(天秤棒)이라고 불리는 어깨에 메는 도구에 여러 음식이나 식재료를 운반해 파는 행상(行商)으로부터 구입 했다.

 

우리나라의 철가방의 시원 쯤 되는 오카모찌(岡持)라고 하는 음식 배달통도 이때 만들어졌다. 농사처럼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 음식을 배달하는 도구로 시작되어 일반 음식 배달통으로 널리 사용됐다.

 

■ 조선: 쿠팡식 로켓와우 시스템?

우리나라에는 조선 후기 황윤석(1729-1791년)이 쓴 <이재난고>에 “1768년 7월에, 과거시험을 본 다음날 점심에 일행과 함께 냉면을 시켜먹었다” 라고 하고 있어 냉면을 배달시켜 먹는 시스템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도 하인을 시켜 배달을 시켰을 것이다. 이유원(1814-1888년)의 <임하필기>에서는 1800년에 “어느날 밤 군직에게 명하여 문틈으로 면을 사 오게 하며 이르기를, 너희들과 함께 냉면을 먹고 싶다 하셨다.”라고 기록한다. 순조(1800-1834년)도 즉위 초에 선전관을 불러 달구경을 하다가 “냉면을 사 오라고 시켰다.” 라는 기록이 있다. 냉면을 이른바 테이크아웃 한 셈인데 18세기말~19세기에 우리나라도 배달과 포장문화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최영년(1856-1935년)이 쓴 <해동죽지>에도 요종갱(曉鍾羹)이라고 하는 국을 배달시켜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광주성(남한산성) 내의 가게들이 효종갱(曉鐘羹)을 잘 끓인다. 배추속대와 콩나물, 송이버섯과 표고버섯, 소갈비, 해삼, 전복을 토장에 섞어 종일 푹 곤다. 밤에 이 항아리를 솜에 싸서 서울로 보내 새벽종이 울릴 때면 재상집에 이른다. 국 항아리가 아직 따뜻하고 속풀이에 더없이 좋다.”

새벽종 소리에 도착하는 국이라는 이름 그대로 밤새 배송하여 새벽에 도착하다니. 지금의 새벽 배송 시스템이다. 이러한 배달 시스템은 주로 상류층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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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로아 2020-09-28 12:14:17
조선시대에 테이크아웃이라니? ㅎㅎ 흥미로운기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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