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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전쟁] 러시아는 기름값 오르면 총을 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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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전쟁] 러시아는 기름값 오르면 총을 들지
  • 이동훈 기자
  • 승인 2022.04.25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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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조지아 돈바스까지 국제유가 상승 때마다 침공
국제유가 최저때 나토에 폴란드 체코 불가리아 등 뺏겨
2014년 돈바스때 서방, 경제제제로 러시아 산유량 줄여

“국제유가가 상승하면 러시아인들은 전쟁을 생각하지.”

독일의 경제학자 다니엘 그로스(Daniel Gros)의 말이다. 실제 2014년까지 10년 동안 국제유가가 오르자 러시아는 크림합병과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 대한 군사개입을 시작했다.

당시 러시아는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의 위협에 대응”이란 전쟁명분을 내세웠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코로나팬데믹 여파에 따른 국제유가의 폭등 조짐 속에서 이뤄졌다. 이 때도 나토의 동진(우크라이나 나토가입)을 막기 위한다는 구실을 내세웠다.

1979년 석유금수 조처로 유가 폭등, 아프가니스탄 침공

러시아는 소련 시절인 1979년 기름값이 지속적으로 오르자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1973년 첫번째 석유금수 조처로 유가가 4배 폭등했고, 1970년대 막대한 매장량이 발견되면서 러시아(소련)의 산유량은 크게 증가한 것이 적극적인 군사조치로 이어졌다고 경제학자들은 보고 있다.

그러나 1980년 20배 가까이 폭증했던 러시아(소련)의 산유량이 줄어들고, 유가 하락이 시작되면서 러시아(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지지부진해지기 시작했다. 이같은 기조속에서 1988년 아프간 철수를 선언한다. 당시 소련의 산유량은 3분의 1로 줄었고, 결국 3년뒤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로 이어지는 나비효과를 부른다. 러시아의 경제는 파탄지경이었다. 유가는 배럴당 10달러까지 떨어져 회복불가능처럼 보였다.

1999년 유가 폭락에 러시아  수모, 폴란드 등 나토 가입

이런 와중에 냉전시대 옛소련(러시아) 주도의 바르샤바조약기구 가맹국이었던 폴란드 헝가리 체코 등 3개국이 1999년 3월 12일 나토에 정식 가입했다. 나토가 동유럽까지 아우르는 세계 최강의 군사동맹체로 발돋움한 것이다.

당시 서유럽은 이들 세국가의 나토가입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 폴란드의 당시 국방비는 33억달러, 체코는 12억달러, 헝가리는 7억4천5백만달러였다. NATO본부의 추산에 따르면 이들 3개국이 NATO에 부담하는 비용은 모두 합쳐 매년 6천5백만달러에 불과했다.

하지만 NATO는 이들 세 동맹국의 무기 통신 방공망 등을 서방수준으로 개선하기 위해 앞으로 10년간 매년 1억5천만달러를 투입해야 했기에, NATO내 서유럽국가들은 이들의 가입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과 독일이 나서 “이들을 NATO 밖에 두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든다”며 다른 동맹국들을 설득, 가입을 성사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지켜보던 불가리아 루마니아 슬로베니아 등 동유럽권과 옛소련 소속의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의 발트해 연안국들도 90년대 중반 이후 나토의 신규가입을 희망하기 시작했다.

서방, 불가리아 등 나토 가입 거부하겠단 약속 불이행

이에 러시아는 동서간에 21세기를 위한 새로운 안보협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하며 중동부 유럽은 물론 옛소련의 일원이며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발트해 연안국가까지 NATO가 통제하는 시대는 허용할 수 없다고 강력항의했다.

NATO는 즉각 당분간 신규가입국에 NATO군을 주둔시키지 않겠다며 러시아를 달랬다. 하지만 라트비아는 2004년 3월29일, 루마니아는 2004년 3월29일, 리투아니아는 2004년 3월29일, 불가리아는 2004년 3월29일 등 차례대로 나토에 가입했다.

러시아는 소련 해체에 따른 내부의 정치적 혼란에 사로잡혀 EU나 나토가 동방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것에 반기를 들 수조차 없었다. 왜냐하면 러시아는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주머니 사정은 2000년대 초반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2014년 돈바스, 서방은 기름값 떨궈 러시아 제제

푸틴 정권하 국제유가가 회복되고 러시아 산유량도 늘면서 러시아의 경제적 토대가 되살아난 것이다. 그때서야 러시아는 미국과 유럽에 나토가 동방으로 확대하지 않겠다는 묵계를 요구했다. 유가가 지속적으로 오르면서 러시아 산유량 가치는 새로운 고점을 찍었고, 2008년에는 1990년대 수준의 10배에 이르게 됐다. 러시아는 같은 해 조지아를 침공했다.

러시아 산유량 가치는 2012년에서 2013년 또다시 최고를 기록했다. EU와 우크라이나의 통상협정에 대해 러시아의 태도가 강경해진 건 바로 그 시점이다. 그리고 2014년 돈바스 내전에 러시아는 개입한다.

당시 서방국가들은 유가를 배럴당 40달러 선까지 떨어트렸다. 결국 러시아의 산유량 가치는 절반으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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