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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戰] 러시아-우크라, 스탈린이 뿌린 증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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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戰] 러시아-우크라, 스탈린이 뿌린 증오
  • 이동훈 기자
  • 승인 2022.05.13 01: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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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증오에서 비롯된다. 그렇기에 부차 학살과도 같은 전쟁범죄도 가능하다는 것이 전쟁전문가들의 지론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사실 동슬라브 민족 최초의 나라인 키예프 루스를 기원으로 한다. 재밌는 것은 이 나라를 세운 것이 바이킹 족의 일파인 노르드인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는 이를 의도적으로 부정하면서 동슬라브 민족이 세웠다는 논리를 세운다.

12세기 십자군 전쟁의 영향으로 무역 중심이 지중해로 옮겨가면서, 키예프 루스는 여러 공국으로 분열된다.

이런 상황에서 1223년 몽골제국은 칼가강 전투에서 루스 공국의 연합군을 격파하고, 1237년 결국 루스 공국을 멸망시키고 킵차크 칸국으로 합병시킨다.

이를 기점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민족의 역사는 갈라진다. 우크라이나는 이후 리투아니아, 폴란드,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차례로 받다가, 18세기 러시아제국에 병합된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뿌리 깊은 원한의 역사가 시작된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공산당 즉 볼세비키에 의한 최대 피해자다. 1920∼1921년 소련 공산당이 우크라이나 곡창지대의 수확물을 무리하게 징발해 러시아 본토로 보내는 과정에서 대기근이 발생, 최소 1100만명에서 1500만명의 인구가 사라졌다.

이런 이유로 우크라이나는 농촌에서부터 민족주의가 확산된다. 그러자 피의 독재자 스탈린은 1927년 집권 후 민족주의를 철저히 탄압하기 시작했다.

스탈린은 1928년 우크라이나 농민들의 민족주의를 없애기 위해 ‘농업 집단화’를 추진했다. 농민들로부터 토지를 빼앗고 집단농장으로 보내는 강제조치가 이뤄졌다.

또한 소련 공산당은 수확물 강제 할당을 시작했고, 여기에 흉년까지 겹치면서 1932∼1933년 최대 600만 명의 우크라이나인이 사망한 대기근이 다시 벌어졌다.

유럽 최대 곡창지대에서 대규모 아사자가 발생하는 진구한 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스탈린은 기근의 책임을 우크라이나 공산당원들에게 떠넘겨 약 10만 명을 숙청했다.

이를 제노사이드라고 부른다. 대다수 역사학자들은 이 대학살을 유대인 홀로코스트에 비유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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