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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소리꾼은 관중과 대화하는 다역 연기자다“판소리 동초제 이수자 김규형 선생
현정석 기자 | 승인 2019.07.05 02:13

김규형 고수가 사철가에 대해 관객들에게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이코노믹매거진= 현정석 기자] 국악인 김규형에 대한 수식어는 많다. 한국국악협회 고수분과위원회 위원장, 세한대학교 겸임교수, 새울전통타악진흥회 회장, 국립국악관현악단 악장, 모듬북 창시자, 6대 품바,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동초제 이수자 등이다.

그는 옛 것을 받아 전통을 지키면서도 시대에 맞는 국악을 만들기 위해 고민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냈다. 하나의 북이 아니라 서로 다른 소리를 내는 세 개의 북을 모아 모듬북이라는 것을 창시했다.

그의 공연은 정형성이 있으면서도 거침없는 애드립으로 유명하다. 그러다 보니 공연이면서도 함께 모내기한 뒤 저녁에 막걸리를 마시면서 대화하는 느낌이다.

그는 공연을 하면 국악을 잘 들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가사에 얽힌 이야기는 무엇인지, 추임새를 언제 넣어야 하는지 듣고 나면 관객들은 한층 국악에 가까워진다,

국악인이지만 파격적인 그는 찢어진 청바지에 귀걸이, 단화를 신고 다닌다. 그는 청춘이라는 단어가 시기가 아니라 영혼이라는 말을 이해시키는 사람이다.

그와 나눈 이야기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해봤다.

. 아버지가 국악을 하신 분이라던데.

김규형(이하 김) : 우리 아버지 동초 김연수 선생은 구전으로 전해와 조금씩 틀리거나 했던 춘향가 흥부가 등 판소리 5바탕 가사를 정리했고 현대 판소리의 양대 산맥인 서편제와 동편제를 모아 동초제(東超制)를 완성하셨다. 또 사철가 같은 노래 중에 인수순약 격석화같은 어려운 한자 문장 때문에 해석이 다른 버전들도 정리하셨다. 그래서 아버지는 대한국악원장을 거쳐 초대 국립창극단장도 하셨다. 나는 태어나기 전부터 그런 아버지 밑에서 국악을 들으며 자라다 보니 자연스레 국악의 길을 걷게 됐다.

-. 6대 품바다. 왜 국악인이 품바를 했었나.

김 : 아버지께서 판소리는 혼자서 몇 시간 동안이고 1인 다역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연기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다니다 품바를 알게 돼서 1년 여 간 품바를 했다. 공연을 하며 큰 돈을 번 것은 아니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 자체가 좋았다. 나는 북치는 고수이면서 소리꾼이고 연기자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공연 기획했던 분은 아마 돈 좀 벌었을 것이다.(웃음) 나중에 기념 품바 공연을 했을 때는 제대로 돈을 받고 공연했다.

-. 대학을 늦게 간 이유가 있나?

김 : 어렸을 때부터 국악을 해왔으니 반드시 대학을 가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좀 더 정리된 공부를 해보고 싶었다. 품바를 했던 것도 20대 초반이었다. 중대는 국악대학이 따로 있는 곳이다. 지금은 전통예술학부로 이름이 바뀌었다. 아무튼 그 때 국악을 하며 좋은 분들도 많이 만나고 신명나게 살았다.

-. 혼자만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과도 공연을 하는 이유는?

김 : 청출어람 청어람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가르쳤지만 나보다 더 뛰어난 제자들이 있다. 스승으로서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있을까. 같이 공연하러 다니면 즐겁고 좋다. 모듬북은 여럿이 하는게 더 좋다.

-. 모듬북은 어떤 것인가.

김 : 서로 다른 소리를 내는 북들로 연주하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모듬북이라는 용어를 안 쓰고 떼북이라는 용어를 썼으면 아마 지금도 그렇게 불릴 것이다. (웃음) 소리도 좋았지만 북도 참 좋았다. 그래서 북채를 잡았고 북의 전통을 지키며 발전시키고 싶었다. 

기사입력 2019.07.05 01:59:54

현정석 기자  gsk126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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