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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즈의 클래식 여행] 하이든의 에스테르하지 시절
뮤즈 신준하 | 승인 2019.08.28 19:02

[이코노믹매거진 = 뮤즈 신준하] 1761년 5월 1일 하이든은 파울 안톤 에스테르하지(Paul Anton Esterhagy) 후작 집안의 부악장에 취임하였다. 당시의 악장은 G. 베르너(Werner)였다. 하이든은 이 해에 2개의 첼로 협주곡, 콘체르토 그로소와 유사한 교향곡 6~8번을 작곡하였다.

하이든은 에스테르하지 후작의 집에서 1790년까지 거의 30년에 가까운 세월을 충실히 근무하였다. 작곡하는 일 이외에도 연주가들을 채용하고 이들을 교육하는 일도 하였다. 에스테르하지 궁에서는 매일 음악회가 열렸고, 주말에는 오페라 연주가 있었으며 수시로 방문하는 손님들을 위하여 언제나 음악을 준비하고 있어야만 했다. 하이든은 이러한 막중한 일을 불평없이 충실하게 수행하였으므로 에스테르하지 후작과 관현악단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1762년 파울 안톤 에스테르하지가 사망하고 그의 동생 니콜라우스 에스테르하지(Nikolaus Esterhagy)가 그의 자리를 계승하였다. 그는 오페라 극장과 인형 극장이 딸린 호화로운 궁전을 재건축하였는데, 하이든은 이 극장들을 위해서 5개 이상의 인형극과 수십 편의 오페라를 작곡하였고, 니콜라우스 후작이 현악기의 일종인 바리톤(Baryton)을 즐겨 연주함에 따라 그의 요청을 받고 바리톤을 위한 실내악 작품을 200여 곡 이상 작곡하였다.

1766년, 베르너(Werner) 악장이 사망하자 하이든이 악장이 되었다. 이 때부터 하이든은 궁정을 위하여 더욱 열심히 일하였고, 따라서 더 많은 음악을 작곡해야 했다.

그는 음악을 작곡하는게 좋았고, 에스테르하지 궁정의 온갖 행사용 작품을 직접 작곡했다. 그의 대부분의 오페라, 총 104편 중 90편이 넘는 교향곡, 83곡의 현악 4중주 중 60여 곡, 그리고 기타 현악 3중주, 피아노 3중주, 피아노 2중주, 피아노 소나타 등 숱한 작품의 대부분이 바로 이 에스테르하지 시절에 쓰여졌다.

1770년대부터 하이든의 명성은 전 유럽에 퍼졌다. 1780년 초에는 모차르트와 만났으며 교향곡과 현악 4중주 분야에서 서로가 영향을 받았다.

1790년, 니콜라우스가 죽은 후 그의 아들 안톤(Anton) 제후가 지위를 계승하였는데, 안톤 제후는 궁정의 어려운 재정 때문에 오케스트라를 해체하였다. 하이든은 풍족한 연금을 받고 에스테르하지 궁정을 떠나 빈으로 이주하였으며 이 때부터 궁정의 계약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창작 활동을 하게 되었다.

 

즈(신준하), 문화평론가

서강대학교 법학과 졸업

전 월간 뮤즈 발행인 겸 편집인 역임

전 공연기획사 뮤즈 커뮤니케이션즈 대표 역임

- 프라하 모차르트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 슬로박 심포니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 크로스오버 콘서트 '情'

- 피아니스트 톤 데머스 내한공연

- 가톨릭 우리소리 관현악단 로마 바티칸 초청공연

- 최광철과 프렌즈 공연

- 퓨전재즈밴드 '쿨'(재즈와 설치미술의 만남 "Funky Meets Sculpture") 공연

- 뉴 재즈 보이스(5인의 여성재즈보컬 조인트 콘서트)

- 어쿠스틱 재즈밴드 '네브라스카' 공연

- 대한민국 도예명장 항산 임항택 전시회 등 다수의 클래식, 재즈 공연 및 전시회 기획

현 문화예술 전문가 그룹 '뮤즈미디어' 총수

현 뮤즈 클래식스 밴드 리더

기사입력 2019.08.28 18:59:12

뮤즈 신준하  musemed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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